한동안은 리플레이를 안 봤다. 진 판을 다시 보는 게 고통이라서였다. 어차피 졌고, 졌다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고, 굳이 내 실수를 영상으로 확인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점수가 한 구간에서 몇 주째 안 움직이니까 결국 마음을 고쳐먹었다.
며칠 동안 내 플레이를 돌려봤다. 예상과 달랐던 점이 몇 가지 있어서 정리해둔다.
처음엔 그냥 괴로웠다
첫 영상은 보는 내내 얼굴이 뜨거웠다. 내가 이렇게 허술하게 하고 있었나 싶었다. 분명 그때는 최선의 판단이라고 생각했는데 화면으로 보면 왜 저기로 가는지 이해가 안 되는 순간이 계속 나왔다.
특히 놀랐던 건 내 기억과 실제가 다르다는 거였다. 나는 초반에 잘 풀리다가 중반에 무너졌다고 기억했는데, 영상을 보면 초반부터 이미 작은 손해가 쌓이고 있었다. 기억은 결과에 맞춰서 이야기를 만든다. 졌으니까 중반에 무너진 걸로 기억하는 거다.
진 판보다 이긴 판이 더 도움이 됐다
이건 의외였다. 진 판에서는 실수가 너무 많아서 뭘 고쳐야 할지 오히려 헷갈렸다. 반면 아슬아슬하게 이긴 판을 보니까 패턴이 보였다. 이긴 판에서도 같은 실수를 하고 있었는데, 운이 좋아서 넘어간 거였다.
그걸 알고 나니까 승패로 플레이를 평가하면 안 된다는 걸 알았다. 이겼다고 잘한 게 아니고 졌다고 못한 게 아니다. 이제는 이긴 판도 한 번씩 본다. 이긴 판에서 찾은 실수가 가장 공짜로 얻는 교훈이다.
내가 찾은 반복되는 실수 두 가지
리플레이를 열 판쯤 보니까 같은 장면이 반복됐다.
- 시야 없이 앞으로 나가기.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로 먼저 들어가서 손해를 본다. 알고는 있었는데 이렇게 자주 할 줄은 몰랐다.
- 이득 본 직후에 욕심내기. 교전에서 이겼으면 그만두고 정리해야 하는데, 한 번 더 먹으려다 역전당한다.
둘 다 실력 문제가 아니라 습관이었다. 알면서도 하던 것들이라서 오히려 고치기 쉬웠다. 판 시작 전에 이 두 개만 머릿속에 적어두기로 했다.
보는 방법도 정했다
처음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다 봤는데 너무 오래 걸려서 오래 못 갔다. 지금은 규칙이 있다.
한 판당 딱 세 장면만 고른다. 내가 죽은 장면, 싸움을 시작한 장면, 이상하게 이득을 본 장면. 각 장면에서 멈추고 “그때 뭘 보고 있었지?”를 스스로 묻는다. 전체 시간은 십오 분을 넘기지 않는다. 짧게 하니까 다음 날도 하게 된다.
효과는 천천히 왔다
점수가 갑자기 오르진 않았다. 그래도 같은 실수를 하는 횟수가 눈에 띄게 줄었다. 무엇보다 판이 끝나고 “왜 졌지”가 아니라 “어디서 갈렸지”를 생각하게 된 게 크다. 질문이 바뀌니까 답도 구체적으로 나온다.
리플레이를 보는 건 여전히 조금 창피하다. 그래도 이 창피함이 나를 고쳐주는 거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내일 저녁에도 세 장면만 보려고 한다.
친구에게 보여주기도 했다
혼자 보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어서, 같이 게임하는 친구에게 장면 하나를 보내서 의견을 물어봤다. 내가 보기엔 합리적이던 판단이 친구 눈에는 명백한 실수였다. 반대로 내가 심각하게 여긴 실수는 친구가 “그건 그럴 수 있지” 하고 넘겼다.
남의 시선이 들어오면 내가 얼마나 내 기준에 갇혀 있었는지 드러난다. 창피함은 두 배가 되지만 얻는 건 세 배쯤 된다. 다만 부탁할 때 예의는 챙기자. 한 장면, 짧게, 질문을 정해서 보내는 게 서로에게 편하다.
나중에 다시 볼 사람에게
이 글은 사실 몇 달 뒤의 나를 위해 쓴다. 또 슬럼프가 오면 리플레이를 열기 싫어질 텐데, 그때 “세 장면만”이라는 규칙을 기억하면 좋겠다. 전부 보려고 하면 못 한다. 조금만 보면 계속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