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에 방 정리를 했다. 몇 달째 미루던 일이었다. 책상 밑 서랍을 비우다가 맨 안쪽에서 낡은 휴대용 게임기가 나왔다. 케이스에 먼지가 쌓여 있었고, 한쪽 모서리는 긁혀서 색이 벗겨져 있었다.
정리는 거기서 멈췄다. 서랍 앞에 쭈그려 앉아서 한참을 만지작거렸다.
충전기를 찾는 데 한 시간 걸렸다
문제는 충전기였다. 규격이 요즘과 달라서 어디에도 맞지 않았다. 박스를 뒤지고 잡동사니 서랍을 열고 결국 오래된 케이블 뭉치에서 비슷한 걸 찾았다. 반쯤은 포기하고 있었는데 꽂아 보니 작은 불이 켜졌다.
기다리는 동안 이상하게 설렜다. 이십 년 가까이 된 기계가 켜질지 아닐지 모르는 상태. 어릴 때 새 게임을 사 오는 길에 느끼던 기분과 닮아 있었다.
켜졌다
화면이 켜지고 익숙한 시작 소리가 났다. 순간 코끝이 찡했다. 저장 데이터가 남아 있을지 몰랐는데, 하던 게임이 그대로 있었다. 이름 칸에는 어린 내가 아무렇게나 적은 닉네임이 있었고, 진행도는 어정쩡한 중간쯤이었다.
그 게임을 끝까지 깨지 못한 이유가 기억났다. 어느 구간에서 계속 막혀서 포기했다. 지금 보면 별것 아닌 구간인데, 그때는 며칠을 붙들고 있었다. 화면 속 캐릭터가 같은 자리에서 계속 쓰러지는 걸 보니 웃음이 났다.
어른이 되어서 해본 같은 판
호기심에 그 구간을 다시 해봤다. 몇 번 죽었지만 이십 분쯤 지나 깼다. 어릴 때는 그렇게 어렵던 게 이제는 패턴이 읽혔다. 정확히는, 어디서 죽는지 알면 거기서 조심하면 된다는 걸 이제는 안다.
돌이켜보면 요즘 하는 랭크 게임도 비슷하다. 막히는 구간이 있고, 화가 나서 포기하고 싶지만 천천히 보면 길이 있다. 어릴 때의 나는 그걸 몰라서 접었고, 지금의 나는 그나마 한 번 더 시도해볼 줄 안다. 그 정도가 자란 부분인 것 같다.
결국 정리는 못 했다
해가 질 때까지 게임기를 붙들고 있었다. 방은 여전히 반쯤 어질러져 있다. 서랍에서 나온 물건들은 다시 서랍으로 들어갔다. 버릴 걸 정하려다가 대부분 버리기 어렵다는 걸 알았다. 각각에 기억이 달려 있어서다.
게임기는 책상 위 눈에 보이는 곳에 올려뒀다. 다시 서랍에 넣으면 또 몇 년간 잊을 것 같았다. 가끔 켜서 저장 데이터가 사라지지 않았는지 확인해야겠다.
다음 주말에는 정말 정리를 마치려고 한다. 아마 또 뭔가 나와서 못 끝낼 확률이 높지만.
그 시절의 소리와 손맛
버튼을 누르는 감촉이 지금 컨트롤러와 너무 달라서 놀랐다. 딱딱하고 반응이 둔한데, 그게 또 묘하게 정이 갔다. 십자키를 누를 때마다 나는 작은 소리, 액정 뒤로 어른거리는 빛. 요즘 기기에는 없는 것들이다.
그때는 게임 하나를 사면 몇 달을 붙들고 했다. 공략집도 없고 영상도 없어서 막히면 스스로 방법을 찾을 때까지 헤맸다. 불편했는데, 그래서 더 오래 기억에 남은 것 같다. 요즘은 막히면 검색부터 하는데, 가끔은 일부러 안 찾아보고 헤매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든다.
같이 놀던 친구
그 게임기로 같이 놀던 친구가 떠올랐다. 연락이 끊긴 지 오래됐다. 연락처를 찾아봤더니 번호가 그대로 있었다. 보낼까 말까 고민하다가 사진 한 장만 찍어서 보냈다. 답이 올지는 모르겠다. 오지 않아도 괜찮다. 보내고 나니 마음이 가벼워졌다.